추석날 가족모임을 끝내고 새벽 안반데기로 향했습니다. 아래 지방에서 서울 쪽으로 올라가는 차량은 그 시간임에도 거의 서있다시피 하는 것을 보며 신나게 달려 내려왔어요. 밤 운전이 예전보다는 많이 불편해있는지라 규정속도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가족모임에서 음주를 안 했으면 내가 운전을 할 리도 없었지만 이렇게 조심스럽게 달리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본인이 운전 안 하고 옆에 타서 보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더욱 세게 달리는 것 같아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대관령 IC를 벗어나고 시내를 살짝 지나면서는 좁은 길이 이어졌는데 거의 10km 전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어요. 앞이 잘 안 보여 쌍라이트를 켜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자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어요. 좁은 밤길이고 옆에서 무언가 툭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산길은 혼자 지나간다면 긴장은 물론 오싹함도 살짝 들 것 같았습니다. 10km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하고 남은 키로수를 보면 1km가 줄어있었어요. 1km도 산길은 긴 거리지만요.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가고 있는데 정말 옆에 노루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요. 순간 움찔했습니다. 칠흑같이 깜깜한 길을 40에서 50 정도의 속도로 가다 보면 더 센 짐승도 나타날 것 같은 무서움마저 들었어요.
초긴장 상태로 운전대를 꽉 잡고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안반데기 초입에 들어서니 이미 차박을 하고 있는 차가 눈에 들어왔어요.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긴장감도 풀렸습니다. 와우 안반데기 카페를 지나 멍에 주차장까지 올라갔어요. 짙은 안개가 몰려와 더 올라가야 되나 망설이다가 끝까지 가보았습니다. 아래위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꽤 있었어요. 날씨가 흐려서 이 정도지 날이 좋았다면 주차할 공간도 없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듯해서 다행이다 싶었죠. 내 자리는 비워있다는 자기 암시를 하면서 와서 그런지 걱정 없이 정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안반데기 멍에 주차장은 화장실이 있는 아래쪽과 위쪽으로 나뉘어 있어요. 먼저 위로 가보았습니다. 자리가 두 군데 정도 비어 있었어요. 주차를 하고 보니 아무래도 자다가 화장실을 가려면 가까운 쪽이 낫겠다 싶어 다시 내려가 보았습니다. 아래에는 좀 더 많은 빈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화장실 다녀오는 젊은 친구들의 말이 들려왔어요. "화장실 실화냐!"심각하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는 것을 보고 화장실이 열악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왔지만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린 상태고 자기 전에 다녀와야 될 것 같아 그래도 화장실을 가보았어요.
어른인 나도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시 카페 앞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내려갔어요. 그곳은 그래도 나았습니다. 위로 다시 올라가자고 했지만 안개가 너무 많이 뒤덮은 상황이라 그냥 화장실 가까이 주차를 하고 자기로 했어요. 양 옆으로 이미 다른 차들이 주차해 있어서 화장실을 가운데 두고 옆쪽으로 주차를 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그때까지 화장실 냄새는 나지 않았어요.
은하수와 보름달을 보기 위해 차박을 결정하고 달려왔는데 구름도 많고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어요. 실은 날씨가 최적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검색을 통해 알고 왔지만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상외였습니다. 고지대에 가면 일어나는 현상이고 안개가 많다는 것은 자고 나면 날씨가 좋을 거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하고 잠자리를 폈습니다.
낡은 자동차인거는 둘째 문제 치고 의자를 끝까지 펴고 누울 수 있다고 늘 그래 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차에서 누워 자 본 적이 없었던지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서 잠이 오질 않았어요. 좁은 곳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지만 더욱 잠을 청할 수가 없었고요.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 자리를 잡고 눕기까지 한 시간.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꿈지럭 부스럭거리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새벽 5시 반이었습니다.
안반데기 일출시간은 06시 03분이었습니다. 안반데기 해 뜨는 거는 볼 수 있을까 살짝 또 기대를 하고 눈을 떴어요. 짙은 안개는 여전했습니다. 몇 시에 뜨는지 어느 쪽에서 봐야 되는지 검색을 하고 있는데 옆 자동차 한 대에서 젊은 남녀가 내려 어디론가 가는 것이 보였어요. 해 뜨는 곳을 볼 수 있다는 곳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안개는 여전했고 도저히 일출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둘은 아랑곳없이 안갯속으로 사라졌어요. 바람도 불고 새벽이라 추울 텐데 얇은 옷만 입고 가는데 살짝 걱정이 되었죠.
차에서 내릴까말까 망설이다가 한참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싶었지만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 참았어요. 긴장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화장실을 더 가는 것 같았어요. 안개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살짝 걷혔다가 다시 몰려오곤 했다. 하늘을 보니 일출도 볼 수 없는 날씨였습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안개도 많이 끼고 바람도 많이 부는데 예상외로 날씨가 그렇게 춥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지난 5월 초에 왔을 때에는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낮이었는데도 겨울 장갑을 끼고 올라간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