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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중에 오랜 지병를 앓거나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건강] 돌보는 힘 - 아가와 사와코의 간병 입문

<돌보는 힘>은 94세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간병했으며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도 돌보는 등, 간병 체험이 풍부한 일본의 아가와 사와코씨와 1만명 이상의 임종을 지켜본 고령자 의료의 일인자인 의사 오쓰카 노부오 씨의 대담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의 번역을 한 분 중에는 제가 좋아하고, 알게 모르게 때로는 본받고 싶은 부분이 많은 지인이 계십니다.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기뻤는데 마음껏 축하 해주지 못했습니다. 겨우 전화한통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를 하면서 단숨에 읽은 [돌보는 힘]은 치매와 오랜 병원생활을 하는 가족들과 환자분을 위한 작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목에 걸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스테이크나 초밥(초밥정도야 포장이 가능하겠지만)을 특별 주문할 수 있어서 아버지께서 매우 만족해 하셨다는 내용은 우리 한국의 병원 정서상으로는 거의 없지않을 환경에 놀랐습니다.  만약에 있다면 얼마나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이루어질 환경일까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드시게 하는 게 가장 좋아요. 참으로 신기하게도 음식을 삼키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도 좋아하는 것은 목에 걸리지 않아요." 얼마나 현명한 대답인지요. 병원에서 특히 의사분들은 항상 원칙과 규칙만 우선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틀을 깨우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인거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먹을 정도이고,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마다하고 결국에는 말처럼 목에 걸리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에 감동하고 깊이 반성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비환자가 주는,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은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염 내지는 억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환자를 환자로만 볼 게 아니라 아프지 않을 때와 같은, 조금은 감정으로 대하면 환자도 편하고 돌보는 가족도 편할수가 있겠구나 싶습니다. 

 

"많은 병원들이 대체로 의료를 우선하다 보니 질병 치료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을 법한 것, 이를테면 음주 같은 것을 금지하고, 가족이 병원으로 음식을 가져오는 것도 원칙적으로 안 되고 죄다 제한을 하지요. 반면에 저희 병원은 면회도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OK입니다.  일상생활 또는 즐거움이라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면 원칙에도 융통성이 생기거든요.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의사들과 직원들이 있는 거니까요."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의사들과 직원들이 있는 거니까요.

 

믿고 맡긴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의사를 의사로 환자를 환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두껍게만 생각하고 있는 넘사벽, 그 벽을 허물어주는 말인것 같습니다. 환자 자신이 환자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내용입니다. 병원을 가게 되면 어쩌면 다시는 병원밖으로 못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연세가 있어서 들어가게 되면 아마도 자포자기 한 상태로 계시는 분들도 있을거구요. 실제로 제 외할머니는 얼른 쾌차하셔서 다시 시골에 내려가셔야지요. 했더니 "다시 돌아가겠나.." 힘없는 말씀만 하셨었습니다. 결국은 그대로 입원한 병원에서 돌아가셨지만 이럴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의사나 간호하는 분들이 의례적인 의학용어로만 할 게 아니라, 말한마디라고 용기를 주고 의욕을 불어넣어 주면 자포자기 대신, 다시 활력이 생기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조금은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면회도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OK- 이런 병원이 있다는 것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찾고 싶습니다. 병원에 갈 건강도 나이도(알수없지만) 우리나라 어디를 찾아봐도 이런 병원이 있을까요? 잘은 모릅니다만 없을 것 같습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와 같은  병원생활을 한다면 환자도 가족도 마음속 어딘가 묻어있는 양심의 가책없이 조금은 편하게 돌보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은 건 기억 못 해도 감정은 기억한다.

 

근무자가 환자에게 얼마만큼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했는지에 따라서 환자의 행동이 결정되거든요. 불온한 마음으로 대하면 환자는 안정을 못 해요 아는 거죠. 상대방의 감정을. 그래서 잠도 못 자고요.. 개인의 기질도 있습니다만 역시 기분 나름이지요. 기분. 다들 이건 알아 두었으면 하는데요. 치매 환자는 들은 건 기억 못 해도 상대가 자기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디, 분노인지 조바심인지 애정인지 그런 것만은 정확히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어렵죠.

 

문득 친정엄마가 생각납니다.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간호를 하셨지요. 심한 정도가 아니어서 급수도 못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한참동안 엄마가 치매가 걸렸다는 것을 인식하는 자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어떤 행동 하나하나를 말씀해주시면서 그때가 시작이었다는 것을 아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온순했습니다. 아픈것도 참 많이도 참을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너무 참고 있어서 자식들이 화를 낸적이 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화가나면 화난다고 말씀을 하시라고요.  그러한 엄마는 병원에 계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엄마의 기질은 무엇이었을까요. 엄마도 감정이 있었을 텐데 아무 내색도 안하신 엄마는 그때부터 자포자기 하신걸까요. 외할머니처럼 당신이  살아서 집으로 갈 수 없을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으로 아셨을까요. 차라리 어떤 기질이 있었다면 그에 맞는 조치라던가 행동을 했을텐데 엄마는 시종일관 평온했습니다. 나중에는 잠시 너무 아파 고통스러워 하긴 했지만, 아마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 그보다 가까이 간호를 했던 가족들도 아무도 엄마가 얼마나 아파했는지 얼마나 살고 싶어했는지 얼마나 속상해 했는지 모릅니다. 

 

노인은 세 유형이 있다.

'되돌아보니 내 인생은 변변치 못했다. 이것도 별로였고 저것도 안 됐다' 라고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속을 끓이는 사람. 다음은 '내가 이런 인생을 사는 것은 이놈 탓이다 저놈 탓이다' 하고 타인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속 긇이는 사람. 마지막으로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즐겁게' 하며 과거의 일은 제쳐놓고 미래를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  노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고, 중년이 되는 사람들도 이제 노년으로 접어드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들로, 이런 유형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가와씨는 세 번째 유형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역시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과거는 과거, 이미 지나간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현재를, 오늘 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돌보는 힘

'의사는 역시 선지 의료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가능한한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장수국가의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의사에게는 두 개의 커다란 가치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은 의료의 패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죽음을 미루거나 피하도록 철저히 주입되어 왔지요. 다른 하나는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것을 정사응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자기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야 하는 것이지요.' '튜브를 잔뜩 달고 영양분이나 약을 투여하더라도 그에 반응할 채력이 없으면 부담이 되고 결과도 비참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의사만 탓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료 행위를 요구하는 가족도 있고 그것을 요구하는 여론도 있거든요. "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을 온갖 수단을 써서 연명시키죠. 정말로 그걸 바라는 건 누구일까요? 수명 연장이 가능해진 요즘 시대에 인간은 어느 시점에 결단을 하고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요?

 

우리 모두는 죽음을 생각하면 잠을 자다가 고요히 가는 것을 바랍니다. 남아있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누구도 비참하게 생명이나 연명하면서 병원생활을 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자연스러운 죽음이 얼마나 될까요. 건강할 때에야 무슨말을 못하겠습니까. 거동이 불편하고 어느 날 내 생각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 가족들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항상 기도합니다. 친할머니처럼, 친할아버지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물론 그분들도 고통이 있었지만,  짧은 병원생활, 짧은 고통으로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많은 고통을 안겨 주지 않았으니까요. 존엄사가 시행하고 있다면 기꺼이 서명하고 싶습니다. 그렇다해도 자식 입장에서 선뜻 내어줄 자식이 얼마나 될지.. 죽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죽고 싶다' 는 사람이 나타나면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 건가요? "알겠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세요. 나쁘게 하진 않겠습니다" 할까요?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죽고 싶다'고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알겠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세요. 나쁘지 하진 않겠습니다.라고 말을 해주는 의사를 만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과거와 결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문장에서 시골 노인정에 하릴없이 매일 모여있던 어른들이 생각납니다. 나이들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독서의 끈을 절대 놓지 말아야 겠습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끝.

 

돌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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