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시는 부시시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노란 고무장갑만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 하루였다. 매일이 그렇듯이 평소와 다를 바 없다. 하루 종일 노트북을 열어 놓고 무언가를 보고 듣고 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없다. 한 가지를 하는 게 아니다. 이것 저것 손이 간 것은 모두 열어 본다. 그러니 기억에 남을 일이 없다.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딱히 집중하거나 열중할 만한 계획이 없다. 마음 한구석만 불편할 뿐이다. 그러기를 몇 날 몇 일 인지 모른다. 심심할 겨를도 없지만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원장님께 전화했더니 직접 전하는 게 나을 거라 해서 전화했더니 받지를 않았다. 페북에 글을 올렸다. 이러면 알아보겠지 하고. 아니나 다들까 댓글이 달렸다. 그럼 안심해도 되는 거였다. 그게 끝인 줄 알았더니 전화가 왔다. 이번 주 휴강 한다고 공지를 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과제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담주는 괜찮겠냐는 질문에 괜찮겠죠 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몇 일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저 미미한 정도이다.
j가 온라인으로 주문한 것인지 택배 상자가 놓여있다. 귤, 대추토마토, 우유2통, 요플레1통. 어제 과일도 잔뜩 사다 놓고 갔는데 열어보니 또 과일이다. 과일 풍년이라 좋기는 했다. 우유는 카레는 오후에 온다고 한다. 카레가 먹고 싶었다. 카레가 좋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카레를 먹어서 병이 없다고. 한동안 먹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난 것이다. 다행이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카레 한 냄비 끓여 놓고 뭐 괜찮으면 토마토스튜도 한 냄비 끓여 놓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약간 어지러웠다. 콧물도 난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휴지로 물 내리는 곳을 닦으며 내렸다. 밑에 곰팡이가 가득이다. 왜 못 봤을까.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곰팡이가 가득한 것 같다. 귀찮다. 이러니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나왔다. 맘 같아서는 락스를 뿌려 당장이라도 없애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평소에 잘 해 놓더니 요즘은 거의 신경을 안 쓴다.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불이 너무 어두컴컴한가?
문득 생각난 듯이 S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를 핑계로 집을 하나 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 얘기 했던 것과는 달리 나오 질 않는다고 얘기한다. 기대를 했지만 실망은 없었다. 그래도 알아본다고 한다. 주말만 가더라도 꼭 있어야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미련한 것이다. 지금까지 미련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무얼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또 이것저것 둘러본다. 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