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시는 이니를 만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한참 후에는 이니의 신랑과 술 한잔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진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이니의 신랑이 알고 있는 남자 친구는 오래전에 헤어지고 지금은 새로운 남자 친구가 있다고 밝히고 싶었다. 어쩌다 잘 있냐고 안부를 물어볼 때마다 그냥 그렇다고 대답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니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왠지 부담스러웠고 당당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곤 했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왜 이니의 신랑에게 고개를 못 든다고 생각했는지 케이시 자신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이니에게 자세한 설명을 안 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이니는 케이시에게 그동안 섭섭했던 것을 말했다. 케이시는 이미 알고 있었다.이니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왜 서운해하는지 섭섭해하는지도.. 왜 둘이 만나도 대화가 원활하지 않고 어색한지 말이다.이니의 말에 의하면 전화를 할 때는 항상 바쁘다고 했다고 한다. 차나 한잔 하자는 말은 잠깐 얼굴이나 보자는 뜻이 아니냐고도 했다. 맞다. 오래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 모른다.
사실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잘 되지도 않는 일을 붙들고 하루 종일 앉아있는 케이시는 친구를 만나 여유 있게 밥을 먹고 수다를 풀 시간적이 아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도 한몫했을 수도 있다. 그건 아주 조금밖에 없었다고 해도 무언가 이니를 만나면 편하지는 않았다. 너무나 형식적인 대화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터놓고 지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서로의 벽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벽은 아마도 수의 이간질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거기에 이니와 케이시는 수년간을 저울질당했고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이니는 수가 없는 지금에서 돌이켜보니 그동안 의심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실마리가 풀리고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 배신감을 케이시는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물론 이제는 내려놓고 잊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수에 대한 감정을 내 안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쌓여있는 한 톨의 찌꺼기마저 모든 것을 도려내고 싶었다. 단칼에 비울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빠른 시간에 내려놓을 수 있어서.
케이시는 이니와 화해를 했다. 수의 모든 것은 잊고 내려놓을 수 있었는데 그동안 이니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형식적인 만남을 가지고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만 생각했었다. 이니의 서운함을 듣고 보니 케이시는 본인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를 깨달았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지만 많이 부끄러웠다. 생각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니는 옳았다. 분명하고 똑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