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티브 라이프

클루지 Kluge

2020. 7. 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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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예컨대 1970년 4월, 아폴로 우주선 13호의 달 착륙선에서 이산화탄소 여과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해보자.. 당시에는 대체 여과기를 승무원들에게 보낼 방법도 없었다. 그때는 아직 우주왕복선이 발견되기 전이었다. 우주 캡슐을 며칠에 걸쳐 기지로 끌고 올 수도 없었다. 여과기가 없다면  승무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빤한 일이었다. 우주비행 관제소의 공학자 에드 스마일리 Ed Smylie는 당시 상황에 대해 동료들과 의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 캡슐 안에 뭔가 쓸모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궁리를 해봐라" 다행히 지상 정비원들은 이 과제를 풀 수 있었다. 그들은 비닐봉지와 마분지 상자, 절연 테이프, 양말 한쪽으로 투박한 여과기 대용물을 그럭저럭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 명의 우주 비행사는 목숨을 건졌다. 그중 한 명이었던 짐 러벨 Jim Lovell은 훗날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 이 장치가 특별히 멋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작동했어요."

모든 클루지들이 목숨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공학자들은 때때로 재미 삼아 클루지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것(예컨대 팅커 토이 Tinkeryoy 장난감으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또는 제대로 하기가 귀찮아서 클루지를 만들기도 한다. 

 

클루지의 유래

 

'클루지 Kluge'라는 단어의 기원과 철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에 'd'를 삽입해 '클러지 kludge로 쓰기도 한다. 이것은 이 단어가 뜻하는 해결책만큼이나 서툴러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잘못된 발음을 유도하는 단점이 있다. '클루지 Kluge'를 제대로 발음하자면 '슬러지 sludge(진흙)'가 아니라, '휴지 huge(거대한)에 가깝다. 몇몇 사람들은 이 단어가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뜻하는 스코틀랜드의 옛 단어 '클루지 cludgie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영리한'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클루그 klug'가 기원이라고 믿는다. <컴퓨터 은어 해커 사전>에 따르면, 1935년에 이미 '클루지 Kluge종이 공급기'라는 말이 쓰였다. 그것은 인쇄기의 부속물이었다.

 

(클루지 공급기는 작고 저렴한 전기 모터와 전자 제어장치가 있기 전에 설계되었다. 이것은 한 구동축으로부터 작동에 필요한 모든 동력을 공급받고, 또 부품들 사이의 박자가 맞도록 캠cam과 벨트와 연동장치를 복잡하게 연결해 놓은 것이었다. 때문에 이것은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웠으며 고장이 잦았고 고치기도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도 이것은 아주 영리한 장치였다.!)

 

 

실생활에서도 수많은 클루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데 1960년대 초까지도 대부분의 차들에 설치되어 있었던 진공식 와이퍼를 생각해보라. 오늘날 대부분의 차에 설치되어 있는 현대식 와이퍼는 전기로 구동된다. 그것은 스파크 플러그를 작동시키는 데에도 충분하지 못한 전력이었다. 때문에 외이퍼 같은 사치품을 구동시킨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영리한 기술자들은 전기 대신에 엔진에서 나오는 흡입력을 이용히 와이퍼 모터를 돌리는 클루지를 고안하였다. 그런데 이 장치의 한 가지 문제는 엔진에서 생기는 흡입력의 양이 엔진의 작동 강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었다. 엔진이 강하게 작동할수록 흡입력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예컨대 1958년산 뷰익 리비에라Buick Riviera를 몰고 언덕을 올라가거나 가속페달을 세게 밟으면, 와이퍼가 굼벵이처럼 움직이거나 아예 멈춰버렸다. 산악 지방에서 비라도 만나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당시 사람들이 대부분 이 장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인간 마음의 특이한 점들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상황에 대한 머진 은유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인간의 마음은 의논의 여지없이 인상적이며, 우리 주변의 어떤 대안적 장치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그러한 사실을 때닫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결함들을 그냥 받아들인다. 감정의 폭발, 그저 그런 기억력, 편견ㅇ 사로잡히는 경향 등을 우리는 우리 마음의 표준적인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우리 마음이 클루지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상자' 밖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선의 과학은 최선의 공학과 마찬가지로, 종종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는 것보다, 사물이 어떻게 달리 존재할 수도 있었을까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신체에도 클루지가 숨어 있다.

 

인간의 척추는 형편없는 해결책이다. 만약 네 개의 기둥이 균등하게 교차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몸무게를 분산해 지탱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단 한 개의 기둥으로 전체 몸무게를 지탱하는 척추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직립 보행 덕분에 우리는 똑바로 선 채로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결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는 해결책이 우리 몸에 들러붙은 까닭은 무엇일까? 척추가 두 발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가 네발 짐승의 척추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즉 불완전하게나마 일어서는 것이 아예 일어서지 않는 것보다(우리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생물에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눈의 감광 부위(망막)는 머리 앞쪽이 아니라 뒤쪽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때문에 온갖 방해거리가 생겼는데, 배선 다발이 눈을 꿰뚫고 지나 갈 수밖에 없어, 우리 두 눈에는 빛에 반응하지 않는 맹점이 하나씩 생기게 되었다.

이것 역시 클루지의 대표적인 예다.

 진화를 통해 생긴 클루지의 또 다른 유명한 예는 남성들의 은밀한 해부학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정소에서 요도로 이어진 정관은 쓸데없이 길다.. 정관은 앞쪽으로다시 갔다가 고리 모양으로 180도를 빙 돌아 음경으로 이어져 있다. 만약 재료를 아끼거나 또는 효율적인 전달을 고려하는 알뜰한 설계자라면, 정소에서 음경까지 짧은 관으로 곧장 연결했을 것이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체계가 구성된 유일한 이유는 이전에 있는 것을 기초로 그 다음 진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과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의) 신체는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하다........콧구멍 위에 쓸모없이 돌기가 나 이고, 치아는 썩으며, 골치 아픈 사랑니가 나오고, 발은 쑤신다.......등은 쉽게 뻣뻣해지며, 털도 없고 부드러운 피부는 베이고 물리기 쉬우며, 햇볕에 타기까지 한다. 우리는 달리기도 잘 못하며, 우리보다 작은 침팬지에 비해 약 3분의 1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고유한 결함들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동물 세계애도 수십 가지 결함들이 널리 펴져 있다. 예컨데 세포 한 개가 두 개로 되는 데 핵심적인 과정인 DNA 가닥이 분리되는 과정은 미로같이 복잡하다. DNA 폴리메라아제polymerase의 한 분자는 아주 간단하게 작업을 수행하는 데 반해, 다른 한 분자는 합리적인 공학자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불규칙하게 작업은 수행한다. 이처럼 자연은 쉽게 클루지를 만들곤 한다. 자연은 그것의 산물이 완벽한지 또는 세련됐는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작동하는 것은 확산되고 작동하지 않는 것은 소멸할 뿐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유전자는 증식하는 경향이 있고,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는 생물을 낳는 유전자는 사랴져버리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은유이다. 이 게임의 이름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적절함 adequacy이다. -개리 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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