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 작은 그릇

과연 사람들은 죽음이건 새 생명의 탄생이건 축하를 하든 조의를 하든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가끔 묻고 싶다. 정말 그게 다 인 것 같냐고 말이다.언젠가 친구의 부조금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했던 일을 겪고 나서는 친구이던 가족이던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성의는 있어야 하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가 안 되는 것이다. 품앗이란 말이 있다. 한만큼 돌아온다는 말도 있다.지금까지 축의금이건, 부의금이건 한 번도 그렇게 계산하며 살지 않았다. 그야말로 마음 가는 대로 했다. 적으면 적은 대로 상대방이 얼마를 했건 마음 가는 대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적게는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어쩌면 안 해도 되는 자리라 해도 마음이 가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더 마음껏 했다고 본다.

 

친구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친구는 정말 마음껏 많이 했다. 그때도 지금도 그 친구는 잘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마음도 덩달아 넉넉해지는 것이 진리이자 순리이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쪼그라져있었나 보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죽마고우라고 치면 어느 누구 못지않게 지내고 있고 절친이라고 서로 말을 하고 있는 사이이다. 그래서 더 속이 상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큰일을 치러보거나 함께 여행을 해보면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격을 알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기도 하단다. 나는 지금도 답답하다. 내 그릇이 그만큼 크기밖에 안 되는 것을 한탄하고 후회한다.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만큼 하지 못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부끄러움만 남았다.내 그릇은 거기까지 밖에 안 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뼈아픈 기억을 남기고서 또 한 번 속상한 마음을 안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거기까지 밖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친구는 잘살고 못살고 그 차원을 떠나서 그만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 20만 원을 더 못해서 나는 평생 후회하면 살지도 모른다.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었고 동생에게 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억지로라도 친구가 한 만큼 했어야 했다. 그게 옳았다고 백번 생각한다. 부끄럽다. 항상 친구에게는 부끄러운 일만 남는다. 또 어떻게든 갚을 날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자꾸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게 불편할 바에야 무리를 해서라도 친구가 한 만큼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이고 순리인 것이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SNS에서 올라오는 글들은 친구를 위로할 수 있어서, 옆에 있어줘서 마음 든든하겠다. 명복을 빈다. 위로의 말을 전한다. 등등 좋은 말만 오고 갔다.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밖에 할 수 없었다. 씁쓸했다. 정말 그럴까요? 하고 묻고 싶었다. 마음은 바늘방석보다 편하지가 않은데 다들 그렇게 편하게만 말하는데. 부의금을 다 못한 마음은 한없이 쪼글라들고 울고 싶었다. 화가 나고 속상했다. 좁은 마음을 원망했다. 처한 위치를 다시 한번 원망했다. 소리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고.

 

잣대를 어디에다 두느냐는 필요 없다. 그저 돈이 최고인 것이다. 돈이 사람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돈이 사람을 가지고 논다. 내가 있으면 당당하고 없으면 작아진다. 원래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작은 것일까. 배포가 크지 못해서 일까. 백번을 생각해도 친구는 서운했을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술기운에 톡을 보냈다. 그릇이 작은 것 같다고. 더 큰 그릇 키워 갚을게라고. 말이 되는 소리냐고! 장례식이 끝나고 전화가 왔다. 다들 어려운데 많이 해서 마음이 그랬을 것 같다고. 할 말이 없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축의금 얘기를 글로 올렸을 때 어떤 분이 지극히 이기적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가 한 만큼 했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친구의 결혼 축의금으로 인해 이담에 아들이 결혼해도 부모가 돌아가셔도 연락을 안 할 거라 마음먹었다. 그야말로 마음이 아닌 돈으로 따진다면 더욱이나 그 친구에게는 연락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다르다. 다르게 생각해도 어찌 됐든 내 맘껏 다하지 못했다. 그게 맘에 걸리는 것이다. 결국에는 좁은 속을 보여주고 말았으니 말이다. 세상은 이렇게 어렵다.. 나이 먹어도 사람 노릇 하기 참 어렵다. 그게 돈이라 더 어렵다.

 

의상도 제대로 예의를 갖추고 입고 가지 못했다. 마침 일이 있어 그곳에 있었기에 빨리 갈 수 있었다. 청바지를 안 입고 간 것만 해도 다행이다. 지금 생각해도 초라하다. 몇 날 며칠 체해서 얼굴이 노랗고 시커멓고, 잡티 주근깨 투성이의 내 알굴을 보고 한 친구가 네 얼굴이 왜 그러냐. 필링 같은 걸 좀 하라고 했다. 집에 와서 보니 정말 더 시커멓고 잡티에 주근깨가 더 난리였다. 하필이면 콤팩트로 안 가져 간 날이었다. 발라도 표도 안나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꼬이는 날이었다.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친구들에게 팔아주고 소개해준 친구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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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하지 않으면 갚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정말 나는 이기적이었을까. 어렸을 적 나는 퇴근길에 친구 엄마에게 들려 고등어도 사다 드리고 과일도 사다 드리고 했다. 집에는 안 사가도 혼자 계시는 엄마를 위해 무언가 사다 드리곤 했다. 그걸로 다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엄마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그랬지만 결국 부의금을 다하지 못해 그릇이 작은 사람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유독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 주는 그림은 그렇지가 않다. 결혼식 축의금 때문에 전화를 한 다른 친구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기억하지 못한 내 탓이지만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축의금 사건이다.친구에게 꼭 갚아줄 것이다. 내 맘껏 해줄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이 편하게 놓아주는 길이다. 이기적이다.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하지만 물은 다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물을 받아서 새로운 기억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