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무얼 하다가 코앞에 닥쳐서야 매번 서둘러 알아보는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기한 내에 사무실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전을 하기로 약속한 것은 말일까지 인데도 아무 대책도 못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엊그제 은비네 집에서 얘기할 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은비 신랑은 그런 것에 대해 예민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한편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계약서가 노트북 가방에 있어 꺼내 주었더니 그렇게 안 하고 동거인으로 하면 어떠냐고 한다. 사실 계약서도 비를 맞으며 일부러 준비해 둔 것이다. 동거인으로 올리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해도 되는지 알아보고 그렇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더욱 무안해지고 말을 꺼낸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케이시는 다음 날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컨테이너에 꾸며놓은 좁은 사무실이었다. 시골이라 조금은 넓을 거라 생각한 케이시는 큰 오산을 하고 실망을 했다. 컨테이너를 반으로 갈라 가운데는 주방이 있고 양쪽에 사무실 겸 쓰고 있었다. 상주는 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금액 다운은 안된다고 했다. 차로 3~4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많이 고민된다. 당장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망설여진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전기세 수도세를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케이시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지어도 어떻게 그렇게 지어놓고 세를 받는지 알 수가 없다. 막막한 마음을 끌어안고 돌아서 왔다. 오는 길에 두리번 주위를 살펴보아도 케이시가 원하는 사무실은 없는 듯했다. 느리게 운전을 하며 돌아서 오는 케이시는 착잡하기만 했다. 저녁에 약속만 없으면 한없이 운전대를 잡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케이시는 어질러진 방 안을 둘러보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수업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하다가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노트북 무게도 있고 해서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케이시는 일전에 들은 주차장을 온라인으로 예약을 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결제를 했다. 내비게이션으로 주소 검색을 하니 온통 빨간색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면서 마실 음료를 제조를 하고 서둘러 준비를 마쳤다. 차문을 열었더니 썩은 내가 났다. 뒤 의자가 온통 젖어 있는 것을 그냥 두었더니 하얗게 곰팡이 비슷한 게 일어났다. 어쩔 수 없이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고 출발을 했다. 지난주 못 들은 강의 내용을 틀었지만 웅웅 울리는 차 소리에, 냄새 빠지라고 에어컨을 틀고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소음으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내 포기를 하고 cd에 담겨있는 음악을 틀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밤 10시가 넘은 것을 전화벨 진동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다. 받을 수가 없었다. 문제를 풀지 못해서 한 순간도 머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였다. 문제를 풀고 지우기를 수차례 그래도 안돼 바람 쐬러 나갔다. 전화를 했다. 저녁을 밖에서 먹는다고 했다. 9시가 넘지 않도록 둘이 마음먹었다고 했다.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가라오케를 드나들면서 아가씨를 부르며 놀고 있다니 두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걸 그만두겠다고 자랑스레 얘기하는 것이 더 우스웠다. 그 좋은걸 왜 그만두냐고 계속하라고 했다. 유일한 낙을 왜 끊냐고 비꼬듯 얘기했지만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도 한심하지만 두 사람도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