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안반데기가 수많은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차박으로 유명하지만 고랭지 배추를 심어 수확하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자연보호를 위해서 화장실은 있지만 세안을 하거나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만 있어요.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 엉망이 되는 걸 보는 건 사실입니다. 새벽에 도착해서 잘 때까지는 바람이 불어 잘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이 반대쪽으로 부는지 냄새가 조금 나기 시작했어요.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잠을 설쳤건 말았건 자는 사람을 깨워 자리를 옮기자고 했습니다. 다시 멍에 주차장으로 향했어요.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산책을 다녀오는 길인지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이 없어 꼬재재한 모습은 매 한 가지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요. 두툼한 겨울 점퍼를 챙겨가지고 갔기 때문에 걸쳐 입고 나갔습니다. 어떤 이는 무릎담요를 두르고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멍에전망대까지 갔지만 폐쇄된 상태였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배추는 수확한 곳도 있고 그대로 남겨둔 곳도 있었어요. 듬성듬성 그대로 있는 배추 딱 한 포기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생각뿐이었어요. 물어볼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마음대로 가져오면 큰일 납니다.
멍에전망대를 내려와서 올림픽 아리 바우길이라는 곳으로 올라가 보았어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멍에전망대 반대편에서 보는 전경은 역시 풍향 발전기였어요. 어디서건 보이지만 좀 더 이쁘게 담을 수 있는 위치인 것 같아요. 초록으로 물든 배추밭이면 더 이쁠 것 같아요. 남아있는 배추 한 포기 잡고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습니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고 내려오다 보니 안개는 어디로 사라지고 어느새 날씨는 정말 쾌청하게 변해 있었어요.
멍에전망대와 올림픽아리바우길을 내려와서 지난번에 갔던 관광농원까지 가보자 했어요. 관광농원에서는 차박을 할 수 있는데 예약을 해야 하고 약간의 취사도 가능한 것 같았어요. 새벽에 내려오기 전 낮에 예약을 알아보니 자리는 있다고 했어요. 차 한 대에 2명까지 기본이고 금액은 9만 원인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강릉 안반데기 관광농원 블로그에 들어가면 나옵니다.. 일단 5만 원을 입금하면 예약이 되는 것 같았어요. "산나물 장아찌 3통(9만 원) 담그기 체험 고객은 별보기 체험이 가능합니다"라고 쓰여 있으니 9만 원이 맞는 것 같아요. 예약을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그냥 가보기로 하고 도착을 한 것입니다.
새벽에 도착이고 꼬리 텐트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꼬리 텐트도 없고 숯불은 금지였어요. 다음에는 조금 일찍 출발해서 관광농원에 예약을 하고 라면이라도 푸근하게 마음 놓고 끓여먹고 올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광농원을 가는 도중에 밭에 계시는 분께 배추 안 파냐고 여쭈어보았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안 판다고 하셨어요. 한 포기 얻어갈 수 있냐고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가져가라고 하면 아마 떼거지로 사람들이 몰려와 배추가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썩어 문드러져도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습니다. 보는 이로서는 참으로 아까운 배추였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는 수밖에요.
관광농원까지 가지 않고 차를 중간에서 돌려 내려왔습니다. 배추 수확도 거의 끝나고 해서 굳이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겠다 싶었어요. 내비게이션을 강릉중앙시장으로 찍고 출발했습니다. 내려오다가 빈터가 있기에 차를 세웠어요. 그곳에서 컵라면을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최적의 공간이었어요. 버너를 이용해 물을 끓이는데 도토리가 툭툭 떨어졌습니다. 컵라면은 뜨거운 물을 붓고 3 분지 난 후에 먹는 것과 냄비에 넣어서 끓여 먹는 맛은 천지차이입니다. 백만 년 만에 먹어보는 듯한 컵라면은 그야말로 라면 꿀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차박을 해도 되겠다 할 정도로 넓은 터가 다음번에 가면 그대로 남아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들 점을 찍어놓고 갔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면을 넣기 전에 미리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고 먼저 커피를 마셨습니다. 안반데기에서 마시고 싶은 커피였지만 어젯밤에 내려온 거고 보온병에 담아있지 않아 식은 커피였기에 더욱 커피 꿀맛이었습니다.
밤 11시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한 안반데기는 짙은 안개로 별도 달도 볼 수 없었지만 아침을 맞이하는 상쾌함과 쾌적함 그리고 아직 군데군데 남아있는 배추밭의 푸른 싱그러움이 주는 산뜻한 향기는 잊을 수 없습니다. 차박을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그 멀리 몇 시간씩 달려가서 맛보는 감정이야 다 다르겠지만 묵은 때를 벗기 듯, 찌든 상처와 스트레스는 하늘 위를 온통 검게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을 말끔히 사라지게 하듯 날려버리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위안을 얻고 오는 것 같습니다.
2022.09.12 - [종합상자] - 안반데기 차박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온 후기